Long Day's Journey Into Night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영화의 세계로 걸어 들어간 셜록 주니어>

담배 대가리를 부수는 행위는 담배 피는 시간을 줄일 따름이다. 말하자면, 담배를 태우는 행복한 순간을 한없이 음미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스스로 지속 시간을 포기하는 것이다. 1부에서 완치원에서 영향을 받은 후부터 계속 이어지는 뤄홍우의 이런 파괴 행위는 영화의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나아가는 논리와 일치한다. 아무리 달콤한 진실의 기억이라도 그것은 결국 시계추처럼 현실로 돌아올 뿐이다. 이제 이런 사태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1부에서 관객은 기억-꿈에서만 등장하는 완치원을 쫒기 시작한 뤄홍우를 따라 비선형적인 체험을 경유한다. 즉, 뒤집혀진 카메라의 극단적인 틸팅으로 자주 묘사된 뤄홍우의 기억-꿈과 완치원을 찾아 여러 지역을 헤메는 뤄홍우의 현실을 반복한다. 여기서 기억-꿈은 뤄홍우의 행위에서 담배에 해당한다. 뤄홍우는 기억 속의 완치원을 현실에 출연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휘발하는 기억-꿈을 밀어내고 영원의 현실로 도달하려는 뤄홍우의 시도는 결국 현실에서 완치원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꿈-영화인 2부 지구 최후의 밤으로 이행된다. 이것은 과연 거짓 나부랭이의 꿈이자 영화인가? 시작이 급작스러우나 흔들리는 램프를 대롱대롱 달고 들어가는 그 공간은 어느 때보다 현실감 넘치는 디제시스이다. 왜 이상한 가면을 쓴 소년이 그 곳에 있는지는 잊어버리자. 케이블을 타고 내려갈 때 들리는 쇳 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느지막히 내려가는 모습까지 완벽한 뤼미에르의 세계이다. 조금 이상하지만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이야기도 괜찮다. 하지만 카메라는 마음대로 뤄홍우를 벗어나 카이진을 따라갈 수 있다. 무엇보다 카메라 스스로 순간의 폭죽을 향해 걸어간다. 아뿔싸 이 곳은 언젠가 내가 기억한 것들의 멜리에스적 집합체이구나.

관객은 비로소 영화가 고장난 시계로써 영원히 봉인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들어맞는다. 그것도 매일매일. 거짓의 영화에서 발견하는 기적이란 바로 그런 종류의 것이다.

뤄홍우 역시 결국 이것을 깨닫는다. 2부 중반부에 강한 헤드라이트 불빛 아래에서나 겨우 붉게 보이는 머리를 가진 여자의 대사(저 남자가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를 듣고 뤄홍우가 슬픈 깨달음의 눈물을 흘리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자신에게 꿈-영화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받아들인 뤄홍우는 카이진과 들어간 집을 회전시키고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미 꺼졌어야 하는 폭죽을 계속해서 태울 수 있는 것이다.

추가로 카이에 뒤 시네마나 어떤 평론 글을 보면 마치 다른 걸작에서 훔쳐온듯한 노골적인 오마쥬를 비판하는데 필자는 그게 오히려 기억과 꿈 그리고 영화 창작을 이끄는 원동력이자 차이를 만들어내는 생성 원리라고 생각한다. 비간 역시 그런 비판에 별로 신경쓰지 않을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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